월북 시인 오장환을 만날 수 있는 곳

2011. 9. 3. 07:02국내여행 /충청도















 

월북 시인 오장환을 만날 수 있는 곳

충북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 140번지, 이곳은 오장환 시인의 생가 주소입니다. 오장환 시인은 월북시인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언급이 불가능한 시인이었습니다. 하지만 1988년 월북 문인에 대한 해금 조치로 인하여 그때부터 오장환 시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서정주, 이용악과 더불어 1930년대의 3대 천재라 불렸던 오장환 시인을 만나러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 오장환 시인의 생가를 만나러 가는 골목길에는 아름다운 벽화들이 그려져있습니다. 꽃향기가 여기까지 나는 것 같습니다.





▲ 벽화 옆에는 그와 어울리는 오장환 시인의 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오장환 시인의 "해바라기" 함께 감상해보시죠~





▲ 이번에는 아이들이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즐겁게 노니는 모습의 벽화가 꽃들 옆으로 그려져있습니다.





▲ 벽에 예쁜 그림, 그리고 그것을 더욱 아름답게 완성시켜 주는 오장환 시인의 노래소리, 한 번 느껴보세요





▲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지나면 오장환 시인의 생가를 볼 수 있습니다. 오장환 시인은 1918년 4남 4녀 중 3째로 태어났으며, 조용한 성격이지만 귀염성이 있는 성격으로 보은에서 회인 공립보통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다가 경기도 안성공립보통학교로 전학하여 그곳에서 졸업하였다고 합니다.





▲ 그후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정지용 시은을 만나 시를 배우게 되며,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휘윈"이라는 교지에 첫 작품인 '아침'과 '화염'이라는 두편의 시가 실립니다.





▲ 오장환 시인은 활발한 창작활동을 전개하면서 많은 찬사를 듣게되었으며, 문학활동이 어려운 일제 강점기 시기에 친일적인 작품활동을 하지 않은 시인입니다. 





▲  오장환 시인은 좌익 쪽의 문학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조선문학가동맹'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1948년 월북하였습니다. 월북 이후 '붉은 기'라는 시집을 출간하는 등 창작홛동을 하였으나, 34세가 되던 해인 1951년에 건강이 좋지 못하여 세상을 떴습니다.





▲ 한 때에는 천재시인이라 불렸지만 월북 이후에는 우리나에서는 이름을 듣기도 힘들었던 오장환 시인, 현재는 그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기위해 그의 생가인 충북 보은군 회인면 140번지에 생각를 복원하였으며, 생가 옆으로는 오장환 문학관을 개관하였습니다. 이 문학관에는 오장환 시인의 초기 시, 동시,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매년 열리는 오장환문학제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시금 오장환 시인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고있습니다.





▲ 마지막은 오장환문학관 입구에 비석으로 만들어진 오장환 시인의 시를 소개하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점은 제가 오장환 문학관 내부를 소개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제가 오장환 문학관을 두 번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문이 잠겨져 있어서 내부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에휴~  혹시나 오장환 시인에 대하여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오장환 문학관 홈페이지(
http://janghwan.boeun.go.kr/museum.html)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니 활용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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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래

            - 오장환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가슴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새로운 묘에는
옛 흙이 향그러
단 한 번
나는 울지도 않았다.
새야 새중에도 종다리야
화살같이 날아가거라
나의 슬픔은
오직 님을 향하여
나의 과녁은
오직 님을 향하여
단 한 번
기꺼운 적도 없었더란다.
슬피 바래는 마음만이
그를 쫒아
내 노래는 벗과 함께 느끼었노라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무덤에 아름다운 곷이 피리라.

- 시집 '헌사'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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